안녕하세요, 책을 사랑하는 여러분. 사업 실패와 지병으로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저는 오히려 사람과 세상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마흔 중반을 넘어서야 비로소 삶의 민낯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12살에 이미 세상의 이면을 꿰뚫어 본 소녀가 있네요.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을 읽는 내내, 마치 나의 어린 시절, 혹은 애써 외면했던 내면의 아이와 마주하는 듯한 서늘하고도 짜릿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특별한 성장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제목: 새의 선물
저자: 은희경
출판사: 문학동네
출간일: 2022년 6월 3일 (3판)
페이지: 352쪽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소설은 이렇게 도발적이고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주인공 ‘나’는 30대 중반의 여성이지만, 그녀의 내면은 모든 성장을 멈춘 12살 소녀에 머물러 있죠. 이 소녀는 너무 일찍 삶의 이면을 봐버렸어요. 사랑, 약속, 동정심 같은 것들을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의 목록에서 지워버린 그 순간, 그녀의 성장은 멈춥니다. 혹독한 현실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스스로를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하는 법을 터득합니다. 상처받는 것은 연기하는 바깥의 나이며, 진짜 나는 안전한 내면에서 모든 것을 냉정하게 관찰할 뿐이죠. 이러한 거리 두기는 그녀가 세상을, 그리고 어른들을 이해하는 독특한 방식이 됩니다.
소설의 주된 무대는 한 지붕 아래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집입니다. 그리고 그 집의 중심에는 모든 비밀과 소문, 삶의 이야기가 모이는 ‘우물’이 있습니다. 12살 소녀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계는 위선과 비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각자의 욕망과 상처를 감추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지죠. 어른들은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그들의 비밀을 양분 삼아 세상을 배웁니다.
인물 | 겉모습 | 비밀 |
---|---|---|
이모 | 영어 공부를 위해 펜팔을 하는 순수한 처녀 | 군인과의 로맨스를 꿈꾸며 면회 갈 생각에 들떠 있음 |
장군이 엄마 | 명예롭게 순직한 군인 남편을 둔 현모 | 남편은 파상풍으로 사망했으며, 이웃에 대한 시샘이 많음 |
광진테라 아줌마 | 성실하고 명랑하며 남편을 극진히 위하는 아내 | 남편의 바람기와 폭력 속에서 체념하며 살아감 |
주인공 ‘나’는 단순한 관찰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녀는 어른들의 비밀을 엿보는 것을 넘어, 때로는 인간의 본성을 시험하기 위해 작은 ‘실험’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그녀는 어른들이 어린아이는 순진하고 다루기 쉽다고 여기는 편견을 역이용하여, 가장 어린애다운 모습으로 그들의 경계심을 허물고 비밀의 본질에 접근하죠. 이런 조숙함은 엄마의 부재와 그로 인한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 방식이었습니다.
『새의 선물』 속 사랑은 달콤한 로맨스와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인간관계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주죠. 순진하게 사랑을 꿈꾸던 이모는 가장 믿었던 친구 경자 이모에게 애인 이형렬을 빼앗기는 쓰라린 배신을 경험합니다. 주인공 ‘나’ 역시 삼촌의 친구 ‘허석’에게 설렘을 느끼지만, 그 감정은 이모를 향한 그의 관심 앞에서 질투와 체념으로 변질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밤마다 아내를 때리는 광진테라 아저씨와 그 모든 것을 체념하며 받아들이는 아내 , 그리고 대낮에 벌어지는 장군이 엄마와 최선생님의 은밀한 불륜 등, 소설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욕망, 폭력, 배신, 체념의 순간들을 12살 소녀의 서늘한 시선으로 포착합니다.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위해 언제라도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나의 열정은 삶에 대한 냉소에서 온다.
소설의 제목 ‘새의 선물’은 자크 프레베르의 시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시에서 ‘선물’은 순수한 기쁨이 아니라, 어린 시절을 감옥으로 만들어버리는 결정적이고 서늘한 깨달음의 순간을 의미하죠. 이처럼 소설 속 ‘선물’은 삶의 진실, 즉 어른들의 세계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이기적인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을 상징합니다. 그 선물은 소녀를 조숙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성장을 멈추게 한 감옥이기도 했습니다.
상징 | 의미 |
---|---|
새의 선물 | 순수함의 종말을 고하고,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게 만드는 ‘조숙’이라는 깨달음. |
쥐 | 삶의 추하고 어두운 이면. 주인공이 혐오의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는 습관의 상징. |
우물 | 모든 식구의 삶과 정보가 교환되는 중심 공간이자, 비밀과 소문이 샘솟는 구심점. |
거울 |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연출하는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의 분리를 상징. |
책을 덮고 나서도 주인공 ‘나’의 서늘한 시선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습니다. 우리는 과연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 걸까요? 어른이 된다는 건 단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상처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끊임없이 성찰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 여러 질문을 던집니다.
<새의 선물>을 덮으며, 저는 12살 소녀가 아니라 40대의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저 역시 사업이 무너지고 건강이 나빠졌을 때, 비로소 세상을 제대로 직시하는 ‘새의 선물’을 받은 건 아닐까 하고요. 주인공 ‘나’의 냉소는 단순한 비관이 아니라, 상처받기 쉬운 자신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갑옷이었습니다. 이 책은 묻습니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요?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순과 위선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에게 ‘성장’이란 무엇이었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공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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