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파과』 서평 – 60대 여성 킬러가 전하는 상처와 존엄의 서사

60대 여성 킬러 소설이라는 낯선 설정, 그 자체로 눈길을 끌지 않나요?
구병모 작가의 장편소설 『파과』는 노년 여성의 삶과 내면을 깊이 탐구한 작품으로, 한국문학에서 보기 드문 신선한 여성 서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파과』의 줄거리, 주제의식, 문체의 특징, 그리고 왜 이 작품이 한국 현대문학에서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는지를 차근히 소개해드릴게요.


『파과』 줄거리 요약 – 조각, 사라지는 존재의 이름

『파과』의 주인공은 ‘조각’이라는 이름을 가진 60대 여성 청부살인업자입니다. 젊은 시절 ‘손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누구보다 냉정하게 일을 수행했던 조각은 이제 기억과 신체가 쇠퇴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조직에서는 그녀를 퇴물 취급하고, 자신조차도 점점 기계처럼 살아왔던 삶의 틈새에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죠.

그녀는 어느 날부터 길에 버려진 강아지 ‘무용’을 돌보게 되고, 타인의 슬픔에도 조심스럽게 반응하게 됩니다.
『파과』는 바로 이 노년의 변화, 감정의 회복, 인간성의 흔들림을 섬세하게 그려낸 이야기입니다.


‘파과’의 뜻 – 흠집 난 과일이 가진 깊은 의미

‘파과(破果)’는 ‘흠집 난 과일’이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한자어로는 ‘여자 나이 16세’를 의미하는 중의적인 단어이기도 하죠.
이 제목은 인생의 절정을 지나 상처 입은 존재의 아름다움존엄성을 상징합니다.

구병모 작가는 냉장고에서 썩어가는 과일을 보며 “나도 언젠가 이렇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파과』는 그렇게 잊혀져가는 것, 사라지기 전의 순간을 감각적으로 포착한 소설입니다.


인물 관계와 서사의 흐름 – 긴장감과 서정성의 조화

소설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조각의 삶에 개입합니다.

  • 조직 에이전트 ‘해우’

  • 후배 킬러 ‘투우’

  • 조각이 돌보는 강아지 ‘무용’

이들은 모두 조각이 인간으로 다시 반응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파과』는 단순한 액션 소설이 아니라, 그 안에 서정성과 심리 묘사, 그리고 인간 관계의 복잡성이 정교하게 녹아 있습니다.


구병모 작가의 문체 –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한국문학

『파과』의 문장은 때로 길고 복잡하지만, 그 안에 담긴 리듬감과 감성은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의 내면으로 깊이 몰입하게 만듭니다.
구병모 작가 특유의 감정선 위에 서 있는 문장들은 긴장감과 여운을 동시에 남깁니다.


새로운 여성 서사의 등장 – 60대 여성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여성 킬러’라는 설정 때문만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여성 서사는 젊은 여성이나 가족 중심의 이야기로 한정되지만, 『파과』는 60대 노년 여성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습니다.
그녀는 피해자가 아닌 주체이며, 킬러라는 극단적인 직업을 통해 노화와 존엄성, 자아 회복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파과』의 울림 – 늙어간다는 것의 품격

작가는 『파과』를 “부서져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찰나의 시선”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소설은 나이 든다는 것, 기능을 잃는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고요하게 전달합니다.

2024년, 이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더 많은 이들에게 그 메시지를 전하게 되었지요.
이는 『파과』가 문학을 넘어 영상 매체에서도 설득력 있는 이야기임을 증명합니다.


독후감 – 조용하지만 강한 질문을 던지는 책

『파과』를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나는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나이 든다는 건 단지 사라지는 일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으로 채워지는 일일까?”

흠집 난 과일처럼, 때로는 부서졌기에 더 깊은 맛을 내는 존재가 있습니다.
『파과』는 바로 그런 존재들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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